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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시 판

작성자 yunice
작성일 2014-02-18 (화) 23:47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oorskyj/12020616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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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모리 대학 윤치호 애국가 친필본에 대한 입장

                             에모리 대학 윤치호 애국가 친필본에 대한 입장

혜문  애국가 제자리찾기  
2014/01/22 21:49
http://blog.naver.com/doorskyj/12020616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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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모리 대학에는 윤치호가 1945년 10월 친필로 쓴 애국가 친필본의 원본이 존재한다. 1990년대 가족들에 의해 이곳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나는 에모리대학에 윤치호 친필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에모리 대학과 교섭 2014년 1월 31일 오후 2시 직접 원본을 열람하기로 했다.  이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가 계속되면서, 사실관계의 왜곡을 심하게 하고 있기에 다음의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기술한다.

1. 에모리 대학이 애국가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떤 언론들은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에모리 대학이 애국가 원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열람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바있다. 그러나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윤치호가 1907년 자신이  작사가임을 밝힌 애국가 친필본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도자료나 칼럼을 통해 애국가 친필본의 원본이 에모리 대학에 있다고 한뒤, 문맥의 흐름상 <애국가 친필본의 원본>을 줄여서 '애국가 원본'이란 표현을 사용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후의 문맥을 읽으면 윤치호가 쓴 애 국가 친필본의 원본이란 말의 요약임을 누구나 알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맥을 자르고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애국가 원본을 운운했는데, 실제 에모리에 확인해 보니 '애국가 원본'이 아니다라는 기사는 지나친 왜곡이다.  언론이 대중성을 의식하여 고의적으로 먼전 '애국가 원본'이라 보도하고, 다시 애국가 친필본은 '원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오보의 오보일뿐이다.


보도자료 참고 : http://blog.naver.com/doorskyj/120205707976

2. 에모리 대학 애국가 친필본을 환수한다는 주장에 대해
- 현재는 조사단계, 작사가 확정후 환수단계로 돌입얘정


1월 31일 에모리 대학을 방문하는 이유는 <환수>가 아니라 < 조사 >때문이며, 문화재제자리 찾기는 현재 단계에서 애국가 친필본 환수를 언급한 사실이 없다. 그것은 기자회견 이후 언론이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1월 17일 오후 2시 애국가 제자리찾기 100인 위원회를 발족하고 1.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을 열람하겠다. 2. 작사가 불명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에 광복 7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작사가를 확정해 줄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환수위를 구성했다는 말을 한적은 없다.
다만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가 맞다면, 그리고 에모리 소장본이 윤치호의 친필본이 맞다면 그것은 애국가 작사가의 친필본이므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의미는 아직까지 에모리 소장 애국가 친필본을 환수운동하겠다는 취지가 아니고 현 단계에서 문서열람및 서지 사항을 조사하는 단계임을 밝힌 것이다. 이것을 환수운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언론의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에모리 대학 소장본은 친필인지의 여부, 서지사항의 확인도 끝나지 않았는데, 환수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지나친 호들갑이다.


3. 에모리 소장본이 가치없다는 주장에 대해

1955년 국사편찬위는 애국가 작사가를 조사하면서 '1907년 윤치호 작;이란 친필본이 위조가 아니라면 애국가 작사가를 윤치호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기재했다. 그렇다면 애국가 친필본의 현황을 누구라도 조사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윤치호의 친필이 맞다면 애국가 작사가중 가장 유력한 작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작가임을 밝혔다는 문서이므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로 정부에 의해 공인된다면, 이 문서는 애국가 작사가의 친필본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국가 상징물로 보아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친필본이 1945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하는데,  자신이 작사가라고 밝힌 문건이 1907년에 쓰여지건 1945년 쓰여진건 그것이 쓰여진 시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애국가 작사가라고 밝힌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이는 언제 쓰여졌나의 문제로 중요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안익태 친필 애국가 악보가 갖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안익태는 1930년대 자신이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건국이후 국가로 연주되기 시작하자 1949년 친필 악보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1949년도에 쓰여졌지만 작곡가가 남긴 자필 악보이므로 국가 상징 기록물로 대우받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 근대 문화재로 등록되었으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도 전시된 적있다.
그렇다면 1945년 쓰여진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 역시 윤치호가 작사가가 맞다면 매우 중요한 국가 시록물이며, 문화재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윤치호가 애국가 작사가가 맞다 하더라도 1945년 쓰여진 애국가 친필본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친필본이 갖는 '사료적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본다.

4. 윤치호를 애국가 작사가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주장에 대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여러번에 걸쳐 "애국가는 단독의 작사보다는 윤치호, 안창호를 비롯한 다수의 민족지사들이 창작하고 보급했던 민족의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윤치호가 다수의 애국가 작사가중의 하나라면 친필 원본은 당연히 한국에 소장되어야 할 중요 국가기록물이다. 윤치호가 친일파란 이유로 애국가 작사가란 사실이 부정되어선 안되며, 친일파 작사 애국가 이기 때문에 작가미상 상태로 남겨 두려고 해서도 안된다. 해방 70년을 맞는 시점까지 나는 작사미상의 애국가의 작가를 정부가 확정할 것을 제안할 생각이다 " 고 밝힌 바 있다.
지 금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을 열람하는 것은 서지사항과 보관상태 등을 확인하려는 것이지 윤치호 애국가 작사가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국사편찬위가 1955년 11대 2로 가장 우세한 애국가 작사가로 선정한 사람의 친필본이 존재한다면 누구라도 진본여부와 서지사항. 기증경로를 조사하고 직접 열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에모리 대학에 가서 관련사항을 조사한 사람과 원본을 열람한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 졌다. 친필본의 조사를 마치 윤치호 애국가 작사가로 만들려고 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생각한다.

5. 윤치호는 친일인사이기 때문에 작사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윤 치호는 애국계몽기에 가장 앞서서 활동했던 사람으로 독립협회회장 , 독립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5년동안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던 만큼, 1907년 당시 애국가를 작사했을 개연성은 분명히 있다고 할 수있다. 윤치호가 적극적 친일 행위를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므로 친일행적과 애국가 작사가는 별개의 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친일파를 어떻게 애국가 작사가로 인정할 수 있냐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은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애국가 작사가와 친일의 문제역시 별개의 사안으로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6. 안창호의 애국가 작사설을 부정한다는 주장에 대해

문 화재제자리찾기는 안창호의 애국가 작사가설을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안창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호한 주장보다 훨씬 정제해서 안창호애국가 작사설을 정리해 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애국가는 윤치호 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등 다수의 사람들이 작사 및 개사에 참가해온 공동저작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입장이므로 안창호 설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오해라고 생각한다.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안창호설을 부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명확한 문헌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모호한 언어로 안창호 설을 주장해 왔음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창호 작사설의 주된 내용중 '안창호가 금식기도 후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작사했다"고 하는 내용을 중요한 증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국가가 기독교 복음주의의 소산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애국가는 기독교인들만의 찬송가에 불과, 오히려 국가로서의 격을 깎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름아이콘 꺼져
2014-07-13 00:56
왜? 저작권료 받아먹을라하나? 쪽바리 자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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