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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중수
작성일 2006-07-05 (수) 13:02
신문名 조선일보
날짜 2006.7.5
ㆍ추천: 0  ㆍ조회: 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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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서 택시 모는 '대통령의 외손자'
윤보선 前대통령의 외손 신중수씨…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6·25때 인민군에 부역한 부친 탓에 집안 몰락 71년 남몰래 派獨광부 지원해 한국땅 떠나
“부귀영화는 안 부럽지만 책 욕심은 나네요”
“나는 베를린의 택시운전사….” 한 명문가(名門家)의 후예가 26년째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노란색 영업용 택시를 모는 신중수(61)씨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그러나 현지 교민이나 주재원들조차 그의 가계 이력에 대해 정확히 몰랐다.
“꼭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집안에 대해 말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이국 땅에서 택시 운전하는 저 자신에 대해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는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운동가 신규식(申圭植:1879~1922) 선생의 장손이다. 동시에 윤보선(尹潽善:1897~1990) 전 대통령의 외손이다. 좀더 설명하면 신규식 선생의 장남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이 결혼해 낳은 맏아들이다. 그는 이 양대 명문가의 결합에서 나온 후예인 셈이다.
 
그런 그가 1971년 파독(派獨) 광부의 명단에 끼여 있었다. 석탄 캐는 일과 전혀 무관한 삶이었지만 그는 집안 몰래 파독 광부를 지원해 한국 땅을 훌쩍 떠나와 버린 것이다.
“당시 어디든지 떠나야 했어요. 집안은 이미 몰락했고 이 땅을 떠날 수 있다면 광부든 뭐든 상관없었어요. 마침 사귀던 여인(지금의 부인)이 ‘파독 간호사로 3년간 떠나게 됐다’고 알려왔어요. 공항에서 전송하는 순간, 그럴 게 아니라 나도 가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의 집안 몰락은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겹쳐진다.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한 부친은 장인인 윤보선가(家)에서 살았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이 달라 장인과 사위 간에 사이가 멀어지면서 분가했다. 그러던 중 6·25가 터졌다.
“서울이 적(赤) 치하에 놓였을 때 일본에서 함께 유학했던 부친의 친구가 인민군 고급간부가 되어 내려왔어요. 그 연(緣)으로 부친이 자리를 맡게 됐어요. 제가 어릴 때였으니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다만 어느 날 와이셔츠 차림의 부친이 ‘너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겠구나’라며 껴안던 기억만 납니다.”
부친은 부역죄(附逆罪)로 사형 언도를 받았고, 그 뒤 무기로 감형됐다. 부친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10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뒤였다. ‘빨간 줄’이 그어지면서 모든 친척과 지인들도 멀어졌다. 특히 윤보선과 박정희 간의 대통령 선거전 당시, 윤보선측이 박정희의 좌파 전력(前歷)을 제기하자 박정희측이 “그쪽 사위는 어떤가”라고 되받았다고 한다.
“그 뒤로 부친은 세상을 한탄하며 지냈고 집안은 몰락할 대로 몰락한 것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평생 이념이니 이데올로기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됐습니다. 또 정치에는 환멸을 느꼈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독일 중서부에 있는 아헨 지역에서 탄광 일을 했다. 3년간의 계약 기간을 끝내고 베를린으로 건너와 BMW공장에서 단순직으로 근무했다. 거기서 차 운전을 배웠고, 1980년부터 베를린의 택시운전사가 된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혼자서 하는 것이니 내 삶이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저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웠고 심적 갈등이 많았습니다.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도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택시운전사를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택시 운전을 하면서 책을 읽으며 지낼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귀영화는 안 부럽지만 책 많이 가진 사람들은 부럽습니다.”

글·사진 베를린=최보식특파원 congchi@chosun.com        200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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