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영 렬 家

◈ 장남 ; 치오(致旿)(김고려/이숙경) : 일본을 다녀온 사촌형 좌옹의 조언을 따라 단신 도일, 경응의숙을 졸업하였다. 37세때 대한제국학무국장, 중앙중학교교장을 지냈다. 장남 일선(日善)은 1929년 일본 경도제대에서 의학박사를 취득, 우리나라 근대 병리학을 선도한 의학계의 태두다. 일제때는 세브란스 의전 교수로써, 일본의사들에 맞서 조선의사협회 창립을 주도하고 조선의보(朝鮮醫報) 편집장을 역임했다. 광복후 서울대 창설에 참여, 1956 ~ 1961년까지 서울대 총장을 역임하였고, 학술원 회장 및 과학기술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차남 명선(明善)은 동경제대 법문학부 졸업, 일본고등문관시험 합격, 만주국 간도성창장을 지냈다. 사남 승선은 서울고공 건축과를 졸업, 해군시설감, 해병대 공병감 등을 지냈다.  오남 영선은 미국 정신과 전문의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 차남 ; 치소(致昭)(이범숙) : 1898년 사촌형인 좌옹과 함께 '황성신문'의 전신인 '경성신문'을 경영하였다. 또한 1910년대 당시 대표적인 조선인 회사인 경성직뉴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계셨는데 후에 민족자본이 커야한다는 신념으로 인촌 김성수에게 거의 헐값으로 양도되어 경성방직 설립의 디딤돌이 되었다. 1920년 이상재, 유진태 등과 함께 조선교육회의 설립을 주도해 창립 이사가 되었고 중국의 상해 임시정부와 미국의 이승만박사에게로 막대한 독립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안동교회의 장로로 기독교계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장남 보선(潽善)은 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을 거쳐 영국 에딘버러대에서 고고학을 전공, 서울시장, 상공장관을 거쳐 제2공화국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정권시에는 민주세력의 구심점으로 민청학련 사건, 명동사건, YWCA사건 등으로 전직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차남 완선(浣善)은 경도제대 졸업, 한말 학부대신을 지낸 이용직의 사위이다.  삼남 원선(源善)은 일본 동경농림대를 나와 2공화국때 민선 경기지사를 지냈다 그의 부인 이진완(李辰琓)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증손녀다. 사남 한선(漢善)은 동경제대를 졸업하였다. 오남 택선(澤善)은 치병의 양자로 들어감. 육남 형선(瀅善)은 일본 경응대 졸업 후 사업을 하였다. 이밖에 예경(禮卿), 의경(義卿), 계경(桂卿)의 3녀를 두었다.

◈ 삼남 ; 치성(致晟)(이씨/서경덕/최웅신) : 구한말 국비장학생으로 일본육사를 졸업하였다. 고종황제의 시종무관(종2품)을 지냈다. 1916년에는 채기중, 김좌진 등과 항일단체인 대한광복단에 가입,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4남 4녀를 둚

◈ 사남 ; 치병(致昞)(허병숙) : 구한말 육군정위를 지낸 인물로 자녀가 없어서 택선께서 양자로 들어감.

◈ 오남 ; 치명(致明) : 구한말학부주사, 외아들 유선이 1944년 일본 동경제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해방후 미국 죤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국립의료원장, 한양대 의대학장 역임함

◈ 육남 ; 치영(致暎)(이병영/이은혜) : 중앙고보졸업(7회)후 일본와세대대 법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와싱턴대학 국제법전공(BA), 아메리칸대학원에서 국제법, 외교학으로 석사학위수여. 중앙대, 건국대, 미국고든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수여. 1938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체포, 고문을 받음. 해방후 제헌 및 2,3,6,7대 국회의원, 초대내무부장관, 국회부의장, 서울시장 및 제3공화국에서 공화당 의장 역임, 종교활동으로는 덕수교회장로 봉직. 1남1녀를 둠

◈ 장녀 ; 활란(活蘭) : 4남 3녀를 둚

◈ 차녀 ; 노덕(老德) : 정동교회 첫 여성장로 역임. 1남 4녀를 둚. 장녀 영희는 이화여대 음대교수를 지냈고 차녀 달희의 남편 한상준은 제6대 한양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