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웅 렬 家

◈ 장남 ; 치호(致昊) (마애방/백매려) : 호는 좌옹(佐翁),1881년 최연소자(17세)로 신사유람단에 끼어 일본을 다녀와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이하 편의상 존칭 생략). 뒤에 한국인 최초의 남감리교인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 남감리교를 처음으로 들여오기도 하였다. 1893년에 미국 밴더빌트 대학을 거쳐 에머리 대학을 졸업한다. 밴더빌트 유학시절 좌옹은 들끓는 조국애를 일기에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일본 칭찬이 자자하니 나는 내 나라를 자랑할 일은 없고 흉잡힐 일만 많으매 일본이

부럽도다. 그러나 탄식하여도 무익하매 아무쪼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내 평생을 우리나라 좋은 일에 진심갈력하여 비록 내 생전에는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같이

번성하는 것을 못 볼지라도 내 마음껏 내 내라를 섬기는 것이 내 직분이라.

하나님께서는 내 약한 것을 도와주시니 내 일생이 예수성국(聖國)과 내 나라에 유용하게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윤치호 일기 1888년, 12월)

 

귀국후에는 학부협판등을 지낸후  서재필, 이상재, 이승만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 제2대 회장 및 만민공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가난했고 국운마저 기울었던 구한말 시절,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좌옹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오늘날을 예언하고 희망한다.

 

 

이제 다가올 世紀, 서기 2000년의 조선은 발전과 개선을 거듭해, 오늘의 조선에 비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 아, 이 달라진 조선의 모습을 보기위해

그날 내 다시 조선에 되돌아가고 싶구나.

                                                                         (윤치호 일기 1900년, 12월)

한편 1907년에는 현재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를 작사하였고 1912년 105인 사건때는 주모자로 일제에 체포되어 3년간 수감되기도 하였다. 그밖에 개성 송도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자강회장, YMCA회장, 대성학원 교장, 연희전문 학장 등 우리나라 교육과 기독교계에 큰 공헌을 하였고 많은 자선사업을 하였다. 일제말기 좌옹은 훗날을 위해 자신과 관계있는 많은 기독교단체, 학교 등 민족기관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일부 용일(容日)을 하였다.  이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나 당시의 참혹한 시대상황에서 구약성서의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심정으로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한 좌옹의 선택은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할 것이다.

장남 영선(永善)은 일제시대 미국으로 유학,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조선일보 사장 방상훈이 손녀사위이다. 차남 광선(光善)은 미국 유학후 어장을 경영하다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고 '황성신문' 사장을 지낸 남궁억의 사위이기도 하다. 삼남 장선( 璋善)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사남 기선(琦善)은 미국에 건너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였고 오남인 정선(挺善)도 도미중이다. 장녀 봉희는 김긍선과 결혼, 개성에서 살았고 차녀 용희는 주로 외국에서 살았다. 삼녀 문희는 서울대 법대교수 정광현과 결혼하였고 사녀 은희는 의학박사인 정봉섭과 결혼, 오녀 명희는 조인호와 결혼, 육녀 보희는 이대 음대 교수를 지냈고 이대 문리대학장을 지낸 현영학의 부인이다. 칠녀 영희는 도미중이다.

 ◈ 차남 ; 치왕(致旺)(이모임) : 영국 글래스고대와 일본 경도제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광복 전 세브란스병원장 및 의전교수를 지냈다. 해방후 육군군의감(육군소장)을 역임하였다. 장남 도선(燾善)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차남 훈선(薰善)은 서울법대를 나와 브라질로 이민, 상 파울루에 거주하고 있고, 삼남 연선(然善)은 교통부 시설과장, 고속철도건설공단 관리이사를 지냈다. 장녀 선희(善姬)의 남편 장석윤(張錫潤)은 2차대전때 미국의 OSS대원으로 활약하였고 해방후 제7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 삼남 ; 치창(致昌)(손진실) : 미국 시카고대학을 졸업, 초대 주영공사와 주터키대사를 지낸 외교관이다. 부인 손진실(孫眞實)은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孫貞道) 목사의 큰딸이다. 장남 종선(淙善)은 생화학박사로 뉴욕치과대 교수이고 장녀 원희(沅姬)는 미국 국무부 공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