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와 남감리교의 시작 (국민일보 20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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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교회사] (127) 윤치호와 남감리교의 시작
[국민일보 2005-07-07 15:42]
한국선교부는 대부분 선교사나 선교지망생들이 한국 상황을 듣고 자신이 속해 있는 선교부를 설득하여 시작되었다. 그런데 남감리교의 경우에는 한 한국인 유학생이 미국 선교부를 설득하여 이루어졌다. 바로 그 사람이 윤치호이다. 윤치호는 중국에서 남감리교가 운영하는 중서학원을 다닌 뒤 미국에 가서 역시 남감리교가 운영하는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선교의 사명을 느끼고 있었다.
윤치호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특별히 한국에도 이런 학교를 세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유학기간에 미 전역을 돌면서 한국에 대한 강연을 하였는데 이때 모은 돈을 1893년 봄 에모리대학 총장인 캔들러 박사에게 보내면서 한국에도 기독교학교를 세우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의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가 모은 돈 200 달러를 당신께 보내오니 이 돈을 기초로 해서 조선에도 기독교학교를 설립하여 내가 받은 교육과 같은 교육을 우리 동포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윤치호는 귀국하여 학부협판과 외무협판을 지내면서 조선의 개화와 복음 선교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캔들러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남감리교의 한국 선교를 시작해 줄 것을 계속 요청하였다. 여기에 감동한 캔들러 박사는 남감리교 기관지에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썼다. 이 글을 읽고 어느 성도가 500달러를 헌금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다.
윤치호는 한국에 이미 다른 교파의 선교가 시작되었으므로 남감리교의 선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교 사역을 한,경험 있는 선교사가 와야 한다고 보았다. 남감리교는 윤치호의 권고를 따라서 중국에서 1878년부터 사역하고 있던 리드 박사를 한국에 파송하였다. 당시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남감리교 선교사들은 중국 남부의 기후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역해달라는 요청이 있자 곧바로 선교지를 옮겼다. 리드 박사는 그뒤 남대문 근처,현재 한국은행 자리에 거처를 마련하고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는 이미 사역하고 있던 미국 감리교회와 더불어 남감리교회가 사역을 펼쳐 2개의 감리교 선교부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원문 : http://www.kmib.co.kr/html/kmview/2005/0707/0919855068231112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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