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글성경 어디서 인쇄했나 (기독교창문사 사장 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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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자―성경대탐구 한국의 성경 ⑥] 초기 한글성경 어디서 인쇄했나 |
[2008.08.13 17:50] | ||
초기 한글 성경 인쇄는 어디서 했을까?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을 만든 존 로스는 중국에서 인쇄기를 갖고 성경을 찍어냈다. 그는 인쇄공과 식자공을 두고 중국산 종이와 영국산 잉크를 사용해 '심양 문광셔원'을 통해 직접 성경을 만들었다. 이후 한글 성경은 대부분 일본 요코하마복음인쇄소를 통해 제작됐다. 이곳은 장로교 교인인 무라오카가 1890년대 초 설립한 성경전문 인쇄소로 1920년대 초 고용 직원이 300명이 넘었다. 외국 성서공회가 1896년부터 1923년까지 이곳을 활용한 것은 서울의 삼문활판소보다 인쇄비가 저렴하고 기술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일부분 인쇄가 됐지만 국한문 혼용 성경에 한한다. "진실로 복음인쇄 합자회사는 주께 바쳐졌다. 그리고 주께서 흥왕시키셨다. 무라오카의 첫 사업은 성경을 출판하는 것이었고 직원들은 그 일에 전문가가 되었다. 그들은 일본을 비롯해 필리핀, 한국, 중국에서 사용되는 성경들을 출판했다. 다른 곳에서 성경을 인쇄할 수는 없었다."('Fukuin Printing Company', 1923) 요코하마 인쇄기 시대가 마감되고 서울 인쇄기 시대로 넘어오게 된 것은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진재 때문이다. 관동대진재는 1923년 9월 일본 간토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역사상 최대의 지진 피해다. 이때 요코하마복음인쇄소가 전소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날 때까지 실제로 모든 한글 성경은 일본에서 인쇄됐다. 대진재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미제본분, 연판, 지형 등 3만4000엔에 상당하는 물품들을 요코하마에 있는 복음인쇄 회사 구내에 저장하고 있었다. 한글 성경에서 가장 큰 손실은 소형의 단권 성경전서였다. 수년간 한국 교회는 이 책을 기다려 왔는데 그 손실은 특히 순회 전도자에게 큰 타격이었다."(영국성서공회 연례보고서, 1924)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는 성경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한국의 인쇄기술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4년부터 서울 인쇄기 시대가 열린다. 당시 서울에서 성경을 인쇄하던 인쇄소는 대동인쇄소 신문관 기독교창문사 중앙인쇄소 등이다. 당시 한국인이 출판비 전액을 부담했던 것은 특이한 점이다. 기독교창문사 사장이던 윤치호는 원금을 돌려받을 기대를 하지 않고 2만엔 이상을 전담했다. 한국인 번역자뿐 아니라 한국인 인쇄공과 인쇄소 사장 또한 우리말 성경 전파의 숨은 주인공인 셈이다. 백상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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