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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초월 군림형, 신익희는 務實力行형_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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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위기념사업회
댓글 0건 조회 2,885회 작성일 16-05-0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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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정부통령 선거' 학술대회… 당시 與野후보 리더십 연구 발표

(왼쪽부터)이승만, 신익희, 조봉암.
(왼쪽부터)이승만, 신익희, 조봉암.
60년 전인 1956년 5월 15일 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당시 이승만(1875~1965) 대통령에 맞서 야당 민주당은 신익희(1894~1956) 전 국회의장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하지만 선거 열흘 전에 신 후보가 유세 도중 뇌출혈로 타계하면서 대선 구도가 요동쳤다. 이승만 대통령은 504만표(70%)를 득표하며 3선에 성공했지만,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던 조봉암(1898~1959) 후보가 무소속으로 216만표(30%)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4년 뒤의 4·19 혁명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됐던 당시 선거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국정당학회(회장 박명호)와 해위학술연구원(원장 김학준)은 2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시 선거에 출마했던 여야 후보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연구 발표가 잇따라 눈길을 끈다.

이택선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이승만, 신익희, 조봉암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에서 세 지도자의 리더십을 비교 분석했다. 이 대통령은 의회 제도 도입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동료 의원들을 계몽하는 위치에서 군림하려는 경향이 컸다는 점에서 '초월 군림형'의 리더십으로 분류됐다. 신 의장은 반공주의자였지만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정치적 견해가 다른 세력과 대화하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는 점에서 '무실역행(務實力行)형' 리더십을 보였다. 조봉암은 공산주의 전력에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토지개혁을 추진하고 평화통일 구호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화 정치형' 리더십으로 분류됐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여당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과 야당의 장면 후보의 리더

십을 비교했다. 허 교수는 이기붕 후보가 "태양 없이 빛을 발할 수 없는 달같이 이승만 대통령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후계자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장면 후보는 신익희에게 대통령 후보를 양보하는 대신 자신은 부통령 후보를 맡기로 타협했다는 점에서 "다수 세력을 추수(追隨)하지 않고 난국을 돌파하는 자기 주도형 정치가"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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