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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큰)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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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997회 작성일 05-01-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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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아저씨 보내주신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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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산 스님 essay를 읽어 내려가던 중 우연히 “ 대통령의 할아버지 ” 제하의 글을 접하게되어 발취한 내용을 송부하니 게시판에 게재하든지 활용바람.

- 내 용 -

이 순간은 종교와 이념 등 인간의 분석적 알음알이를 내려 놓고, 역사 속에 현존했던, 그것도 아주 가까이 숨쉬었던 윤 보선 대통령의 {큰}할아버지 윤 웅열 대감의 환생기를 들어보며, 속된 시간을 넘어 성스러운 시간 여행을 해보았으면 한다.

윤대감은 1840년 생으로 조선시대 무신이며, 본관은 해평, 아산 출신으로 1856년 무과에 급제하고, 남양부사 등을 지내며, 1880년 김홍집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고, 형조판서와 군부대신을 지낸 사람이다. 대원군 당시 군부대신을 지내다가 대원군이 중국 귀양길에 오르니, 역시 윤대감도 완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무인고도와 다름 없는 작은 섬에서의 나날은 인생의 덧없음을 절감케 하고, 전생에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이런 고초를 당하는가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시름을 달래는데 시종이 달려와서 이른다.
「대감마님, 용한 점쟁이가 있답니다. 답답도 하실테니 심심풀이로 한번 보시지요?」
「이놈아! 제 점도 못치는 세상, 남의 점을 어찌 친단 말이냐?」
「대감마님! 제 밑은 못 봐도 남의 밑은 볼 수도 안 있겠습니까? 심심풀이로 한번 가보십시오.」
「이놈아! 아무리 그러치만 양반 체면에 무당집을 찾아가란 말이냐? 가서 불러 오려므나.」
한참 있다 돌아온 시종이 말했다.
「대감마님! 아직도 대감으로 착각하는 대감마님의 점은 억만금을 줘도 못 보겠답니다.」
「어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래 가 보자꾸나.」
점쟁이는 겨우 열여섯의 어린 처녀였는데, 동자귀신이 붙어 남의 운명을 용케 알아맞힌다는 것이다.
흘낏 대감을 처다 본 처녀는 말했다.
「대감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앞으로 이 주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빨리?」
대감의 귀가 확 트였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위로의 말로 들어 두자 생각하면서도, 신부들을 따라서 일본으로 유학을 간 자식이 궁금했으므로 자식의 소식을 물었다.
「지금 미국에 가 있습니다. 청국 색시하고 약혼하였으니 내년 가을이면 만나보게 될 겁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 사람이, 미국에 갔을 리도 없고, 미국에 있는 사람이 청국 색시와 약혼했을 리는 더욱 없었다.
어린 처녀에게 허황된 것을 묻고 듣는 자신이 처량하여,
「그럼 난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런 고생을 하나?」
한탄조로 말을 던졌더니, 청산유수로 대답한다.
「대감님! 대감마님은 전생에 석왕사에서 <해파>라는 스님으로 승려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때 형님 되시는 분도 함께 스님노릇을 하였는데, 형님 되시는 분은 스님노릇을 잘못하여 지금은 강원도 홍천에서 이경운이란 이름으로 주막거리에서 술장사 노릇을 하고 있는데, 두 손이 모두 조막손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감은 수행을 잘하신 과보로, 중국에서 재상노릇을 하시다가 우리나라에 태어나 복을 누리시는 겁니다. 고생도 잠깐이니 참으십시오. 수행 잘하신 공덕으로 자손들도 모두 창성하고 부귀영화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석왕사에 가보면 내 전생 일을 알겠구나.」
「아다마답니까! 대감마님 전신인 해파 스님 사리탑까지 세워져 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막연한 기대 속에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십사일만에 귀양이 풀린다는 해배문서가 날아들었던 것이다.
한양에 올라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일년이 지났다. 그 해 가을 홍콩에서 전보가 왔는데,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내외는 결혼식에 참석하고 자식내외와 함께 서울로 돌아와, 제일 먼저 석왕사를 찾게 된다. 1903년 대감의 행차에, 석왕사에 주지 설화스님을 비롯하여 대중들이 깜짝 놀란다. 생각지도 않은 높으신 분이 한양에서 내려왔으니.
「어인 일이신지요?」
「내집에 내가 오는데 이유가 있겠습니까?」
주지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수양했던 곳을 일일이 둘러보며 감회에 잠기였다.
자신의 전신인 해파 스님의 사리탑도 찾고, 금 수백 냥을 내려 석왕사를 중건케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유대력이라는 사람을 시켜, 강원도 홍천에 가서 전생의 형님이었던 이경운을 찾아오게 한다.
버선발로 맞이하며, 손을 잡고 형님이라 부르는 높은 대감에 속마음을 알리 없는 조막손 이경운은 그저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형님 나를 모르시겠습니까? 전생에 주지스님까지 하신 분이 그렇게도 깜깜하십니까?」
윤대감은 이경운에게 자신과의 전생 인연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강원부사 이경영에게 명을 내려, 전생의 형님인 이경운을 편안히 모시도록 시킨다.
「형님 부디 염불 많이 하십시오.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서 또다시 만나 수행하는 형제가 됩시다.」
윤대감은 다시 완도로 향해 간다. 한마디도 틀리지 않은 그 영특한 처녀무당을 만나 인사도 하고, 삼 년 동안 고생했던 유배지를 자식들에게도 보여줄 겸해서였다. 처녀무당에게 소원을 물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하니, 한가지 소원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에게 붙은 동자귀신을 떼어 주는 일이란다.
동자귀신이 있어야 영험한 무당 노릇을 할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남의 운명을 점쳐 준들 그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이가 십팔세가 넘었는데도, 자신을 자신 마음대로 못하고 동자귀신이 하라는 대로 해야하니, 죽는 것보다 괴롭고 부끄럽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 덕 높으신 스님을 모셔 사십구 일 천도제와 백일동안에 지장기도를 올려 주면, 동자귀신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장보살님 가피를 입으신 도력 있으신 스님이셔야 합니다.」
「오냐! 내 너를 위해 무엇을 못하겠느냐.」
결국 처녀무당은 귀신을 떼고 윤대감이 마련해 준 집(전 은석초등학교 뒤터)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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