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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선생에 대해 궁금해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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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연진
댓글 0건 조회 1,445회 작성일 09-08-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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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남양주시에 사는 정연진이라고 합니다. 윤치호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중 우연히 윤문의 사이트에 들렀습니다. 많은 자료도 볼 수 있어 좋았고, 가문에 대해 이런 소개 사이트를 갖고 계신 것에 부럽기도 했습니다. 후손들도 모두 잘 되시는 것 같아 그것도 좋구요.
 
윤치호 선생과 남궁 억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 읽고 있는데, 책도 찾기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남궁 억 선생에 대해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도 힘듭니다.
 
윤 선생님과 남궁 억 선생님의 친분 관계가 많이 궁금합니다. 물론 사돈 관계로 까지 발전했고, 실질적으로 윤 선생님이 남궁 선생님의 후견인 역할을 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그런 친분관계가 시작된 것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며칠 전 국민일보 기사에 의하면 1893년 두 분이 (서신 교환을 통해) 나라 꽃에 대해 논의를 했고 무궁화를 나라 꽃으로 정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남궁 선생께서 칠곡부사로 임지에 계시고 윤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상하이에서 중서서원 교원으로 계실 때인것 같은데 그렇다면 친분관계가 그때 있으셨다는 말인가요. 지방 관리로 계신 분이 외국 망명생활이 10년이 넘어 잊혀져가는 분에게 나라꽃에 대해 상의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갑신정변 당시 윤 선생님은 통역으로서 고종께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던 때였고, 남궁 선생은 갓 영어학교를 나와 세관에 견습생으로 근무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 당시 두분이 만나 친분을 맺었다고 보기도 힘든데. 그렇다면 남궁 선생은 통역이나 궁내 시위대에 근무하실 때 혹시 윤웅렬 대감과 친분을 맺은 것인가요? 당시 윤대감은 지방에 유배를 당해 서울에 안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그것도 궁금합니다.
1893년에 두분이 서신교환을 하셨다면 독립협회에 남궁 선생이 가입해서 활동하신 게 윤 선생님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이해가 되고 함께 독립신문과 협회 일을 보신 부분도 잘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시는 사실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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