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오씨 자행거를 도적이 훔쳐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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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행거' 판매 광고
미국 지가고(知加古, 시카고)에서 제조한 '랙블러'라는 상표의 자전거도 지폐 110원에 판매한다는 광고가 뒤이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자행거'가 바로 자전거다. 이로 미루어 보면, 1900년 전후에 자전거가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는 자전거 관련 행사나 사건 기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동서양 각국인이 1908년 7월 12일 훈련원에 모여 자행거 경주회를 열었고, 1909년 4월 4일 서울 인천 등지의 일본인과 한인들이 훈련원에서 자전거 운동회를 개최한다는 소식도 있다. 길거리에서 일본인의 자전거에 치여 부상당한 어린이 사고 소식이 대한매일신보(1910. 4. 12.)에 실리는가 하면, 일본인이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빌린 후 이를 가지고 도망친 이야기(같은 신문, 1910. 2. 16.)도 있다.
자전거는 군사용으로도 보급된다. '군부에서 긴급한 일에 사용하기 위해 자행거 2대를 비치해 놓았으며, 긴급시에는 영관급 장교에서부터 고용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황성신문, 1908. 11. 13.)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 5월 14일부터 이완용 저격 사건(1909. 12. 22.)의 주인공인 이재명(李在明) 의사에 대한 재판 내용을 공개한다. 이 의사와 함께 공범으로 체포된 김병록에 대한 심문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자전거 이야기가 등장한다. 재판관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저격하기가 어려우니 자행거(自行車)를 타고 빠르게 따라가다가 총으로 저격하자고 두 사람이 서로 모의했는가"라고 추궁하자, 이 의사는 "김병록이 묘책으로 제안한 이 계획은 무모하기 때문에 실천할 수 없었다"고 대답한다.
보통의 한국인 눈에는 자전거가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푸록 코트에 양모자나 쓰고 장안 대도 상으로 분주한 자도 지사라 하고, 여송연이나 물고 인력거 자행거로 분분히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면 머리를 끄떡하고 지나가는 자도 지사라 한다'면서 이들의 꼴불견을 비판하는 논설이 대한매일신보(1909. 8. 3.)에 실렸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국문학 200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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