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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봉급 나누는 장애인들..이게 진정한 부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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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위기념사업회
댓글 0건 조회 2,617회 작성일 16-03-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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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2016.3.25 - 부활절 특별 인터뷰

지적 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 마을' 김성수 성공회 주교
"부활절은 1년에 하루만 있다? 매일, 매 순간을 거듭나야죠"

경기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우리 마을'로 향하는 길엔 초봄의 볕이 따뜻했다. 우리 마을에 들어서자 '촌장(村長)' 김성수(86) 대한성공회 주교가 봄볕처럼 따뜻한 미소로 맞는다. 강화도 사투리인 '어서오시겨'란 현판이 방문객을 환영하는 '우리 마을'은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강화도 토박이인 김 주교는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냈다. '우리 마을'은 2000년 김 주교가 유산으로 받은 땅을 내놓아 설립됐고, 김 주교도 2010년부터 고향인 이곳에 낙향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이곳에서 장애인 50명은 콩나물을 키우고, 전자부품을 조립한다. 김 주교에게 이곳 장애인들은 '친구'다. 부활절(27일)을 맞아 지난 22일 김 주교를 만나 예수 부활의 의미를 들었다.

―부활절을 맞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매일매일이 부활입니다. 거듭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지요. 1년에 한 번 부활절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매 순간 순간이 부활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평소에는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나요? 부활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고, 싸우고, 죄를 지을 수 있겠어요. 요즘 저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또 살려두셨구나' 싶기도 하고, 이게 부활이구나 싶어요. 그래서 어떨 땐 잠자기가 두렵고 싫기도 해요(웃음)."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는 “의사표현은 서툴지만 서로 나누며 살 줄 아는 ‘우리 마을’ 친구들을 보면서 진정한 부활이란 이런 것이라고 느낀다”며 “1년에 한 번 부활절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부활하는 마음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는 “의사표현은 서툴지만 서로 나누며 살 줄 아는 ‘우리 마을’ 친구들을 보면서 진정한 부활이란 이런 것이라고 느낀다”며 “1년에 한 번 부활절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부활하는 마음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우리 마을이 설립된 지 벌써 16년입니다. 이곳 친구들의 생활은 어떤가요?

"저는 이 친구들 볼 때마다 놀랍고, 신기하고, 배웁니다. 지난번에 한 친구가 부모님과 대만으로 휴가를 다녀왔어요. 제가 '재밌었냐?' 물었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요. 그걸 보면서 속으로 '하느님, 제가 또 죄를 지었군요' 했어요. 멀쩡한 인격체인데 저는 지레 그들이 의사표현을 못할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이희호 여사 오셨을 때도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고, 가수 김민기씨가 오면 '아침이슬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몰라요."

―그렇게 놀랍고 감사한가요?

"우리 마을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혼자 밥 먹고, 화장실 갈 수 있으면 합격이에요. 상태는 모두 다르죠. 일을 시켜보고 좀 잘하는 친구들은 콩나물 공장, 다른 친구들은 좀 단순한 전자부품 조립을 맡기죠. 장애 1, 2, 3급 이렇게 구분하지 않아요. 사람을 왜 등급으로 나눠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콩나물 공장은 월급이 많은데, 전자부품 조립은 개당 6원씩이라 하루 종일 해도 3000~4000원 받지요. 그런데 콩나물 공장 친구들이 자신들의 봉급을 전자부품 조립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서 최저임금이 되도록 했어요. 요새 사회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때문에 갈등이 많잖아요. 그런데 여기 친구들은 그렇게 스스로 나누고 있어요. 이런 게 진짜 부활 아닌가요. 이런 걸 배워야죠."

―어떨 때 보람을 느끼시나요?

"이 친구들은 표현이 서툴러요.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것도 그들 나름대로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죠. 이 친구들이라고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비장애인이 100을 느끼고 표현한다면 이 친구들은 0.1밖에 못 하는 차이죠.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는 복지입니다. 이 친구들 부모님이 '우린 은퇴했는데 이 아이 직장 의료보험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할 때 정말 기쁩니다. 이런 게 바로 부활이지요."

―주교님은 이 땅을 기증한 것도 그렇고, 형제분들과 함께 유산도 장학금으로 내놓고 계속 나누는 삶을 살고 계신데요.

"나눈다는 것은 어폐가 있고요, 같이 사는 거죠. 제가 젊어서 폐결핵이 걸려서 집에서 쉬었어요. 외로웠죠. 그때 폐결핵은 나병(한센병) 다음으로 위험했거든요. 다행히 여기가 저희 고향이고 친척분들이 많아서 받아줬지만 24시간 먼 산만 바라보고 멍하니 있었죠. 그때 경험이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데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흔히 장애인 부모들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잖아요. 늘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세요. 안 될 일이 어디 있겠어요. 매 순간 부활하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김 주교는 낙향 후 주변에 "우리 동네가 온수리(溫水里)이니 온천이 나올 거다. 온천 나오면 여러분들 벤츠 한 대씩 사주겠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렇지만 결국 상업성 있는 온천은 발견되지 않았다. 인터뷰에 배석했던 천용욱 신부는 색다른 해석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온천은 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주교님이 바로 온수리의 온천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천 신부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김 주교의 삶이 세상을 따뜻이 적시는 온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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